무제 문서


 이기찬 (2012-02-20 08:49:55, Hit : 10777) 
 회사를 망하게 하는 접대

이태리 업체의 동남아시아 에이전트로 일할 때 본사 수출담당직원과 동남아시아 각국을 함께 여행한 적이 있었다. 담당직원은 사브리나라는 이름의 전형적인 이태리 여자였는데 계란후라이도 멀리할 정도로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그녀의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함께 여행하는 것이 편치 않았는데 결정적으로 홍콩여행길에 문제가 생겼다.

홍콩거래처에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하필이면 해산물을 현장에서 직접 요리해서 먹는 곳이었다. 워낙 홍콩에서 유명한 곳이라 당연히 좋아할 줄 알고 그곳으로 안내한 것인데 사브리나는 끝내 단 한 점의 해산물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귀한 손님이라고 좋은 곳에서 대접하겠다고 한 홍콩거래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귀한 손님을 쫄쫄 굶게 만든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브라질 거래처 사람도 비슷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는 드물게 보는 육식주의자였다. 그냥 육류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채소나 과일을 아예 입에 대지도 않을 정도로 육류에만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홍콩출장길에 거래처의 초대를 받아 간 곳은 으리으리한 중국요리집이었다. 산해진미가 줄줄이 나왔건만 그는 좀처럼 음식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중국요리 속에 들어간 야채와 중국음식 특유의 향신료 때문이었다. 그는 그날의 접대자리가 즐겁기는커녕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괴로웠다고 한다. 중국음식 때문에 얼마나 혼이 났던지 그는 서울체류기간 내내 스테이크 집만 찾아다녔다.

위에 소개한 두 가지 케이스 모두 잘못된 접대 때문에 귀한 손님을 곤경에 빠트린 경우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접대문화는 어떠한가? 외국손님에게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을 소개한다는 미명하에 한정식 집에 끌고 가서 고문을 한 적은 없는가? 잠자기 전에는 신발을 벗지 않고 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을 온돌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맵고 짜고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음식을 반 강제로 떠먹이며 최고의 접대를 하고 있다고 자위하지는 않았는가? 남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서양인을 유흥주점에 끌고 가서 넥타이를 이마에 매고 폭탄주를 돌리지 않았는가?

외국손님을 접대할 때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이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방도 좋아할 것이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도 취향이 틀리거늘 문화적 배경이 판이한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식 접대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접대가 아니라 고문을 하는 것과 같은 역효과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접대 덕분에 회사가 흥했다는 소리는 못들을 망정 접대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



 박주현 (2013-03-13 17:21:11)  
중요한 말씀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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